충비 삼월의 비(忠婢 三月의 碑)

  • 충비삼월의비이미지
    • 위치 : 청원군 오창읍 양지리 산 16번지
    • 종류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4호
    • 규모 : 높이 105㎝, 너비 47㎝, 두께 14.3㎝
    • 지정일 : 1995년 6월 30일
    • 시대 : 조성 정조 20년(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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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 오창읍 양지리쪽에서 목령산을 오르는 산중턱에 김윤(金潤)의 묘소가 있고 묘역 좌측에 노비 삼월(三月)의 비(碑)가 있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이 비는 작지만 보존상태는 매우 좋은편이며 돌이끼가 끼어 고색이 창연하다.
    비의 앞면은 [충비삼월지비(忠婢三月之碑)]라 쓰여있고 뒷면에는 삼월의 공적 내용이 새겨져 있다. 비문에 의하면 삼월은 청풍 김씨(淸風金氏) 집안의 여종으로 성종(成宗) 20년(1489)에 주인집의 장자인 김윤이 태어난 지 3일만에 죽자 삼월이 젖을 먹이어 키웠다.
    김윤이 18세가 되어 결혼을 했으나 또한 불행히도 유복자(遺腹子)를 남긴 채 김윤마저 죽게 되어 삼월이 정성으로 유복자를 잘 보살펴 키우니 후에 벼슬이 우후(虞候)에 이르는 인물이 되는 등 가문이 크게 번창하였는데 그 공이 모두 삼월에게 있다고 하였다.
    이 비는 김윤의 후손들이 삼월의 사후 약 150년이 지난 정조(正祖) 20년(1796)에 세웠으며 글은 정조(正祖)때 좌의정을 지낸 김종수(金鐘秀)가 짓고 글씨는 김치희(金致熙)가 썼다.

목령산성(鷺嶺山城)

  • 목령산성이미지 
    • 위치 : 청원군 오창읍 주성리, 양지리
    • 종류 : 비지정 문화재(성곽)
상세정보
  • 오창읍 소재지의 서쪽으로 1.5km 정도 거리에 있는 해발228m 목령산(驚嶺山)의 정상부를 둘러싸고 토축한 테뫼형산성으로 옛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산정부와 그 능선을 따라 설축되어 둘레 약 390m의 작은성이나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견고하게 이루어졌으며, 기초부분에 판축(版築)과 석심(石心)이 보인다.
    성벽은 산의 정상부에 둘러쌓은 둘레 143.5m의 내성부와 남서로 뻗은 지맥을 연결한 둘레 246.5m의 외성부로 이루어져 2중성을 이루었다. 비록 형태는 작으나 형식을 잘 갖춘 토성이다.
    성내에는 수원(水源)이 전혀 없고 건물이 들어설만한 대지나 유구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현재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북동쪽 정상에 높이 1.2m, 가로 1.8m 세로 1.5m의 석축 흔적이 있어 장대 또는 망대지로 추정된다.
    성내의 지표와 외성 북벽기단의 석심 사이에서 백제계의 토기편이 발견되어 백제축성의 산성으로 추정되며, 산성의 남쪽 기습에 사곡(寺谷)이 있어 사찰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 백제성의 조건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석조여래입상(槐亭里寺址 石造如來立像)

  • 석조여래입상이미지
    • 위치 : 청원군 오창읍 괴정리
    • 종류 : 비지정 문화재(불교유적)
상세정보
  • 괴정리사지에 남아 있는 불상으로 석질이 좋지 않은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마멸이 심한 편이지만 각부는 잘 보존되어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로 두정(頭頂)에는 큼직하고 낮은 육계가 마련되었고, 상호(相好)는 길고 방형에 가깝다. 이마는 좁으나 백호공(白毫孔)이 있고 눈은 반개(半開)하였으며, 코는 큰 편이나 마멸이 심하게 되었다. 입술은 두껍게 표현되었으며 볼에는 살이 쪄있다. 양쪽의 귀는 좁으나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표현되었고, 목은 살이 찌었으나 삼도(三道)가 완연하게 나타나 있다. 어깨는 당당하고 가슴에는 살이 찌어 원만한 상으로 보인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어깨로부터 양팔에 걸쳐 옷주름이 유려하게 흘러 내렸다. 옷주름은 가슴 밑으로 좌우대칭의 U자형을 이루며 10겹의 층단을 이루었는데 하단은 지하에 매몰되어 있다. 수인(手印)은 왼손은 여원인(與願印),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결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른손은 마멸되어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다.
    전체적으로 체구가 당당한 상이며 길게 늘어진 양쪽 귀, 풍만한 상호, 유려하고 강하게 나타난 의문(衣紋)의 처리 등에서 통일신라말기의 조각기술이 보여 9세기말 내지 1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크기는 전체높이 222cm, 머리높이 52cm, 귀 길이 32cm, 어깨너비 70cm, 가슴너비 40cm, 몸 두께 44cm이다.

장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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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치 : 청원군 오창읍 장대리
    • 종류 : 성곽
상세정보
  • 오창읍 소재지인 장대리 장성마을에 있는 해발 126m의 낮은 구릉지에 있는 테뫼형 토축성이다.
    고문헌과 조사자료에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파괴가 매우 심하여 거의 그 흔적과 유구를 식별하기 어렵다.
    둘레는 약 799m이며 성내에서 발견되는 토기편과 망대 등의 유지로써 겨우 그 윤곽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성안에서 백제계의 토기편이 다수 발견되어 이곳이 백제초기에 설축하여 남쪽에 대비한 토성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은 비교적 큰 성에 속하는데 남벽은 경사가 급한 산세를 이용하여 삭평하거나 토루를 구축하여 외험(外險)한 편이나 북쪽 성벽은 경사도가 완만하고 현재 밭으로 이용되어 유구가 완전히 파괴되고 경계도 불분명하게 되었다.
    완만한 중앙부에 건물지가 있었음과 망대와 장대가 남단돌출부와 동남단에 마련된 점으로 보아 이 토성은 남향으로 자리잡은 거주용 토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리사지 석조보살입상

  • 창리사지 석조보살입상
    • 위치 : 청원군 오창읍
    • 종류 : 사지
상세정보
  • 창리사지에 남아 있는 석불이다. 절터에는 1980년대초에 콘크리드조의 작은 당우를 짓고 마당 한쪽에 이 석불을 옮겨 세워 마을 주민들이 공양하고 있다. 남향으로 안치된 이 보살상은 판석의 전면에 7.5cm 높이로 부조(浮彫)하였는데, 판석의 여면이 거의 없는 평면불 형식으로 조각하였다. 안면부는 1975년경에 새로 조각하여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상호(相好)는 방형에 가깝고 머리는 퍼머를 한것처럼 크게 부풀리고 아래로 내려진 머리카락 속에서도 뚜렷하게 표현하였으며, 목에는 8개의 영락(瓔珞)이 달린 목걸이를 두르고 있어 이 불상이 보살상임을 보여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가슴밑에서 U자형을 이루었고,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내장(內掌)하여 무릎에 대었으며, 왼손은 가슴에서 상장(上掌)하여 약합 또는 연봉으로 보이는 물체를 받쳐들고 있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크기는 전체높이 157cm, 불상높이 153cm, 몸 두께 35cm, 부조높이 7.5cm 머리높이 39cm, 어깨높이 115cm, 어깨너비 49cm, 육계높이 7cm, 귀 길이 13cm, 백호지름 1.7cm이다.

탑리 석조비로사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

  • 탑리 석조비로사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이미지
    • 위치 : 청원군 오창읍
    • 종류 : 사지
상세정보
  • 탑리사지에 남아있는 불상으로 노천에 있으나 양질의 화강암으로 조성하여 보존상태가 좋다.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모두 결실한 이 불상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눈은 반개(半開)하였으며 고개는 약간 숙인 듯한 인상이다.
    머리는 나발(螺髮)이고 육계는 있으나 지금은 마멸되어 미간에 백호공(白豪孔)이 남아 있을뿐,눈과 코와 입은 마멸로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양 볼에 살이 찐 풍만상으로 대체로 원만자비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래상이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고,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의문(衣紋)이 부드러우며 양쪽 어깨로부터 몇 줄의 사선을 그린 옷주름이 가슴에서 V형으로 교차되었고, 이것이 양팔에서 흘러내려 무릎까지 유려하게 덮고 있다.
    수인(手印)은 비로사나불에서 흔히 보이는 지권인(智拳印)을 결하였다. 당당한 체구와 유려한 의문, 정교한 조각수법이 주목되는 이 불상은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크기는 전체 높이 90cm, 머리높이 33.5cm, 귀 길이 21.5cm, 어깨높이 56cm, 어깨너비 52.5cm, 가슴너비 28cm, 무릎높이 17.5cm 무릎너비 75cm이다.

석조약사여래좌상(場垈里 石造如來坐像)

  • 석조약사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미지
    • 위치 : 청원군 오창읍 장대리
    • 종류 : 기타 불교 유물
상세정보
  • 오창면읍소재지의 오창지구대 구내에 있는 불상으로 오랫동안 노천에서 풍우에 시달려서인지 마멸이 심한 편이다. 머리는 마멸로 인해 나발(螺髮)인지 소발(素髮)인지 확인이 안되며 얼굴은 비만하고 코는 매우 길고 큰 편이다. 입은 일(一)자형으로 꾹 다물었으나 은은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목은 짧으나 삼도(三道)가 있고 양쪽 귀는 지나치게 커서 어깨에 닿을 정도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촉지인(觸地印)을 결하고 왼손은 복부에서 상장(上掌)하여 약합을 받들고 있다.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이나 마멸이 심해서 의문(衣紋)은 확인이 어렵다.옷주름의 약식표현, 전체적으로 짤막해진 체구, 지나치게 큰 이목구비의 표현 등이 특징적이며 조성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불상의 크기는 전체 높이 86cm, 어깨 높이 49cm, 어깨 너비 46cm, 몸 두께 34cm, 머리 높이 37cm, 귀 길이 24.5cm, 무릎 높이 13cm, 무릎 너비 77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