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덕 충절지사
권병덕은 청원군 미원면 종암리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윤좌, 호는 청암 ,정암,우운, 본관은 안동이다.
그는 18세 때 동학에 입교하여 1894년 동학혁명 때는 보은의 동학군 대장으로 손병희와 함께 6만 농민을 이끌고 항일전선에 합세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실패한 후 각처로 방랑하였다.
1908년 일본에서 귀축한 손병희가 천도교를 일으키자 이에 입교하여 전제관장,이문관장 대린, 금융관장,보문관장을 역임하였으며 1912년에는 천도교에서 분리된 시천교의 종무장을 거쳐 시천교에서 경영하는 중앙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인재양성에 심혈을 기울렸다. 1918년 다시 천도교로 개종한 그는 1919년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정참배를 위해 상경하여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등을 만나 3ㆍ1운동의 계획에 찬동하고 2월 27일 최린, 임례환, 오세창 등과 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로서 서명하였다.
그는 3·1운동 직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경무총감부에 구금되었다가 1920년 경성 복심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속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후 천도교 종리원의 서무과 주임을 거쳐 중앙교회 심계원장,선도사등을 맡아 민족운동을 전개하다1944년 향년 78세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으며 1980년에 청주시 우암산에 삼ㆍ일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건립하여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